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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새로운 각본을 써라, 자신에 대해 첫 번째 창조자가 되라

by 선한 농부 2022. 6. 8.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주도성이란 인간이 가진 천부 능력인 자아의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인생에서 주도성을 확대해 주고 리더십을 발휘하게 해주는 인간만이 가진 독특한 두 가지 능력은 바로 '상상력' 과 '양심'이다.

우리는 상상력을 통해 아직은 창조되지 않았으나 우리 안에 존재하는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를 마음속에 그려 볼 수 있다. 그다음에 양심을 통해 독자적인 재능과 수단을 발휘함으로써 보편적인 법칙과 원칙에 접촉할 수 있다. 이같이 상상력과 양심이 자아의식과 결합하면 우리는 자신에 대한 패러다임인 각본을 쓸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주어진 수많은 각본에 따라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 자신의 각본을 쓰는 과정은 '재 각본과' 과정, 즉 패러다임의 변화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이미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패러다임들을 바꾸는 것이다. 비효과적인 각본과 우리 안에 있는 불완전한 패러다임들을 인식해 감에 따라 우리는 주도적으로 자신을 제가 본 화할 수 있다.

사다트는 어릴 때부터 이스라엘에 대해 증오하도록 교육받았다. 그는 국영 TV 방송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곤 했다. "이스라엘이 아랍 영토의 1인치라도 점령하고 있는 한, 나는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을 외쳤다. 그는 이러한 각본에 따라 국민을 단결시키고 그들의 뜻을 한곳에 집중시켰다.

사다트의 각본은 매우 독립적이고 민족주의적이었으며 국민들에게 대단한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매우 어리석은 것이기도 했다. 사다트 역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 각본은 상호의존적인 현실을 간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각본을 다시 썼다.

그는 젊었을 때 이집트의 화 로크 왕 모반 음모 사건에 연루됐다는 이유로 카이로 중앙교도소 독방에 갇혔었다. 그때 사다트는 각본을 다시 쓰는 과정에 대해 깨달았다. 그는 현재 심정을 떠나 자신에게 있는 각본이 적절하고 지혜로운 것인지를 판단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그는 일단 마음을 비우고 명상을 통해 자기에게 있는 각본을 점검해 보고 기도를 통해 새로운 각본을 작성했다.

사다트는 사실 그 감옥에서 나오기를 주저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바로 그 감옥에서 진정한 성공이란 자신을 제대로 파악하는 데서 온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진정한 성공이란 물질을 소유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데 있다.

나세르 대통령이 통치하던 기간 사다트는 비교적 중요하지 않은 직책으로 좌천되었다. 사람들은 그의 뜻이 꺾이고 좌절되었다고 느꼈지만 사실 그렇지 않았다. 사람들이 그들의 시각에서 그를 바라보았기 때문에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사다트는 자기 시대가 오기를 기다렸다.

마침내 사다트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그는 이집트의 대통령이 되어 이스라엘에 대해 새로운 각본을 썼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있는 이스라엘 국회를 방문하여 세계 역사상 획기적인 평화 정착 발언하였으며 마침내 캠프 데이비드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성과를 이루어 냈다.

사다트는 자아의식, 상상력, 그리고 양심을 활용하여 개인적 리더십을 행사하고 본질적인 패러다임을 변화시키며 상황을 보는 방식을 바꿀 수 있었다. 그는 이러한 일을 자신의 '영향력의 원' 안에서 훌륭하게 해냈다. 그는 새로 쓴 각본인 패러다임의 변화를 통해 행동과 태도 등을 변화시킬 수 있었고 이것은 더 넓은 '관심의 원'에 있던 수많은 양국 국민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자아의식을 발전시키다 보면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가치 없는 습관, 즉 비효과적인 각본에 따라 살고 있는지 또한 삶에서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과는 얼마나 무관하게 살고 있는지를 알게 된다. 습관 2는 우리에게 그러한 각본에 따라 살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자기 상상력과 창의력을 이용하여 새로운 각본을 쓸 책임이 있다. 새 각본은 삶을 사는 데 좀 더 효과적이고 우리가 가장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과 좀 더 일치할 것이다. 나아가 우리의 가치를 더욱 의미 있게 해주는 올바른 원칙에 좀 더 가깝게 해 줄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자녀에게 지나친 반응을 하는 부모라고 가정해 보자. 즉 내가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아이들이 할 때마다 몹시 성질이 난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나는 벼르고 벼르다가 한번 호되게 혼낼 준비 한다. 이때 나는 아이들의 성장에 대해 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주의를 기울이는 게 아니라 당장 내 신경에 거슬리는 행동에만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이는 마치 전쟁에서 승리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지역 전투에서 이기려고 하는 것과 같다.

나는 아이들과 전투를 시작한다. 나는 그들보다 키도 크고 권위도 있기 때문에 고함을 치고 겁을 주며 벌을 주기까지 한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승리한다. 그러나 아이들은 겉으로는 순종하는 척하지만 키우게 되고 언젠가는 부정적으로 표출되고야 말 감정을 억누르게 되며 여기서 우리의 관계는 깨어지게 된다.

자, 앞에서 경험했던 장례식 장면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내 아이 중 어느 하나가 막 추도사를 읽으려고 한다. 나는 이 아이가 가능하면 '우리 아버지는 소소하게 작은 데만 신경을 쓰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고, 사랑으로 우리를 가르치고 교육했던 훌륭한 분이셨다"라고 얘기해 주기를 바란다. 또 '나의 머릿속에는 아버지와 함께 보낸 즐겁고 행복했던 추억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라고 말하기를 바란다. 아니면 '나의 아버지는 사랑이 많으셔서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늘 항상 우리와 함께하셨다' 혹은 '어떤 문제나 고민거리가 있을 때 맨 먼저 아버지께 달려갈 수 있을 만큼 자상한 분이었다'라고 기억해 주기를 바란다. 나아가 '아버지는 완벽해지지는 않으셨지만 최선을 다하신 분으로 나는 이 세상의 누구보다 아버지를 사랑하였다'기 라고 회상해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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