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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성격 윤리와 성품 윤리

by 선한 농부 2022. 6. 7.

그 당시 나는 지각에 관한 연구 외에도 1776년 이래 미국에서 출간된 '성공과 관련된 문헌' 들에 대해 깊이 있게 연구하고 있었다. 나는 자기 계발, 대중심리학, 자기 수련 등과 같은 분야의 책, 논문, 수필 등을 수백 권 살펴보았다. 나는 이 조사를 통해 자유롭게 민주적인 사람들이 성공적인 삶의 열쇠라고 여기는 것의 실체를 확실히 알게 되었다. 

지난 200년간에 걸쳐 출간된 성공에 관한 저작물을 연구, 조사하는 동안 나는 이 문헌들에서 깜짝 놀랄 만한 유형을 파악했다. 또한 나는 우리 가정과 지난 수년 동안 내게 도움을 청해 왔던 많은 사람이 삶과 대인관계에서 비슷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이유를 파악하면서 최근 50년간의 성공 관련 문헌 대부분이 피상적 해결책만을 제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점차 깨닫게 되었다.

다시 말해 그러한 문헌에는 주로 사회적 이미지에 대한 의식, 다양한 기법, 응급처치 식 대응책들만이 가득 차 있었다. 즉 급박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스피린이나 주고 붕대나 감아 주는 식의 처방이 제시되어 있었다. 그러한 처방은 사태가 일시적으로 해결되는 것처럼 보이게 하나 근본적이고 만성적인 문제점들을 방치함으로써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상태를 더욱 악화시키는 것이었다. 

이와는 아주 대조적으로 미국 건국 후 처음 150년 동안 나온 대부분의 문헌은 성공의 기초를 이루는 특성들로 '내적 성품 중심의 사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여기에서는 언행일치나 겸손, 충성, 절제, 용기, 정의, 인내, 근면, 소박, 수수함, 황금률과 같은 덕목을 강조한다. 대표적인 문헌으로 벤저민 프랭클린의 자서전을 들 수 있다. 그의 자서전은 자신의 본성 깊은 곳에 감추어진 내면적 원칙과 실제 행동으로 나타내는 습관을 통합하려고 노력하는 한 인간의 모습을 다루고 있다. 

성품 중심의 사고는 효과적인 삶을 가능하게 해주는 기본적인 원칙들이 있으며 이 원칙을 배워서 자신의 기본적인 성품과 결합해 갈 수 있는 사람만이 진정한 성공과 지속적인 행복을 성취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제 1차 세계대전 직후부터 성공을 가져오는 기본 시각이 내적 성품에서부터 외적 성격 중심의 사고로 바뀌었다. 이러한 시각은 대인관계를 원활하게 해주는 성격, 대중적 이미지, 태도와 행동, 기법과 기술 등이 성공에 더 크게 작용한다고 본다. 

이 같은 외적 성격을 중시하는 시각은 근본적으로 두 가지 방향으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개인 및 대중을 상대할 때 필요한 각종 기법이고 다른 하나는 적극적인 사고방식이다. 이러한 사고의 일면은 다음과 같은 경구들로 표현되는데 이러한 경구는 사람을 분발케 해서 대단히 효과적인 경우도 있다. 

"당신이 가진 태도가 당신이 높은 지위에 도달할 수 있을지 여부를 결정한다." "찌푸린 얼굴보다 미소 띤 얼굴이 더 많은 친구를 얻는다", "사람이 마음을 먹고 신념을 가지면 무엇이든 성취해 낼 수 있다." 

외적 성격 중심의 접근법은 명백히 조작적이며 심지어는 기만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다른 사람이 자신을 좋아하도록 만들기 위해 술수를 쓰게 되고,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취미에 관심이 많은 것처럼 위장하기도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마치 권력이나 재력을 가진 듯이 보이도록' 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위협적인 수단을 쓰기도 한다. 

이 같은 문헌 중 어떤 것은 내적 성품을 성공의 요소로 보기도 하나 내적 성품을 근본이 되고 기폭제가 되는 것으로 인식하지 않고 일반 특성 중의 하나로만 간주한다. 그 결과 내적 성품에 관한 언급은 구색만 갖춘 데 불과하고 실제로 강조된 것은 당장 효과를 내는 임시변통의 영향력 행사 기법이나 권력 획득 전략, 커뮤니케이션 기술, 적극적 태도 같은 것들이었다.

나는 바로 이 같은 외적 성격 중심의 사고를 아내와 내가 잠재의식 속에 가지고 있었고 그런 식의 해결방안을 우리 아들에게 활용하려고 시도했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외적 성격과 내적 성품의 차이를 곰곰이 생각한 결과, 나와 아내는 그동안 자녀들의 모범적인 행동으로 사회적인 만족감을 얻어 왔는데 이 아이만은 그렇지 못해 우리를 실망하게 하고 있었던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우리 자신에 대한 이미지, 자식을 잘 돌보는 훌륭한 부모라는 역할에 대한 이미지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막상 아들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즉 당면한 문제를 파악하고 고치는 데만 정신이 팔려 아이의 장래를 위해 무엇이 최선인가 하는 데까지는 미처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아내와 나는 대화를 하는 과정에서 우리 자신의 성품과 동기 그리고 아들에 대한 인식이 바로 우리의 행동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괴로운 심정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또 사회적 비교를 의식하는 것 자체가 우리 부부가 가진 중요한 가치관과 상반될 뿐만 아니라 이에 따라 아들에 대한 사랑이 조건적으로 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이 애가 점점 자신감을 잃게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러한 깨달음을 바탕으로 우리는 앞으로는 우리 자신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기로 결심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테크닉이 아닌 우리 부부가 가진 기본적인 동기와 아들에 대한 우리의 인식에 초점을 맞추기로 한 것이다. 우리는 아들을 변화시키려고 하는 대신에 한 걸음 물러나서 아들과 우리 자신을 분리해서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그 애만이 가진 정체성 개성, 독립성 그리고 가치를 재발견하려 한 것이다.

우리는 깊은 사고와 믿음과 기도를 통해서 아들이 가진 독특함을 보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그 애 자신의 방법과 속도에 의해 실현될 수 있는 무한한 잠재 능력도 보게 되었다. 우리는 마음을 느긋이 먹고 그를 방해하지 않기로 작정했으며 아들의 잠재력이 자연스럽게 드러날 수 있도록 내버려 두기로 했다.

우리는 그 애의 능력을 믿고 그 애가 해낸 일의 가치를 인정해 주며 함께 기뻐하는 등 우리 본연의 역할만 하였다. 동시에 우리가 가진 각종 동기를 솔직하게 분석해 보고 우리 부부가 느끼는 사회적 가치가 아이들의 성취나 행동과는 무관하도록 강한 심리적 안정감을 얻기 위해 노력하였다.

우리가 아들에 대한 과거의 잘못된 인식에서 벗어나 내면적 가치에 근거한 동기를 갖게 되자 온갖 새로운 감정이 솟아나기 시작하였다. 즉 우리 아이를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고 판단하는 대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좋아하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우리는 이때부터 아이를 보편적인 사회적 기대에 근거해 저울질하거나 우리 부부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에 부합하도록 키우려는 생각을 버렸다.

또 그 애를 사회적 틀에 맞는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 지금까지 우리가 충분히 헤쳐 나갈 수 있는 기본적인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놀림으로부터도 더 이상 보호해 주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 아이는 이 같은 보호를 받으면서 자라 왔기 때문에 이것을 일단 중지하자 처음에는 움츠러들었으며 고통스러워했다. 우리 부부는 이 같은 아들의 마음을 이해해 주었지만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우리가 너를 보호해 줄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너는 근본적으로 정상적인 아이니까."라는 것이 우리가 아이에게 준 무언의 메시지였다.

몇 주가 지나고 몇 달이 지나면서 아들은 스스로에 대해 조금씩 자신감과 확신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그 애는 자기만이 가진 방식과 속도로 자신에게 주어진 일들을 처리해 나가면서 공부, 교우관계, 운동과 같은 부문에서 사회적으로도 인정받을 만큼 뛰어난 성과를 올리기 시작하였다.

또 자연적인 발달과정을 훨씬 넘어서서 엄청난 속도로 발전해 나갔다. 몇 년 지나지 않아 그는 여러 학생 단체에서 리더로 선출되었고 주를 대표하는 운동선수가 되었으며 모든 과목이 A 학점인 성적표를 집으로 가져왔다. 나아가 주위의 모든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고 건전한 방식으로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는 진솔한 성격을 가꾸어 나갔다.

나와 아내는 우리 아들이 이뤄낸 '사회적으로 대단한' 성취가 사회적인 보상이나 인정을 목표로 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아이가 스스로 자신감을 갖게 되면서 이룰 수 있었다고 믿는다. 이것은 아내와 나에게 놀라운 경험이었고 우리가 다른 아이를 다룰 때나 다른 역할을 할 때도 유념하게 된 아주 교훈적인 경험이기도 했다. 이는 성공에 있어 외적 성격 위주의 사고보다 내적 성품 위주의 사고가 훨씬 효과적임을 직접 체험하게 된 기회이기도 했다.

성서의 잠언은 이 같은 우리의 확신을 잘 표현해 준다.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는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이는 인생의 모든 문제나 마음에서 발생하므로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리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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